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전투 마차 (문단 편집) == 유럽의 바겐부르크 == [[유럽]]에서도 [[중세]] 시기에 이미 비슷한 것이 사용되었다. 바겐부르크(Wagenburg)라는 전투마차로서, 사용법은 척계광의 전차전 같은 화약시대의 전투수레들과 큰 차이가 없었다. 그 강력함은 마차[[성(건축)|성]](城)이라는 별명까지 얻을 정도였다. 애초에 바겐부르크란 이름 자체가 독일어로 마차(Wagen) + 성(Burg)의 합성어이니... [[파일:external/i41.tinypic.com/bg3cx.gif]] 왼쪽의 4륜 수레가 대포를 장착한 바겐부르크. 오른쪽은 일반 포차다. [[http://paulsbods.blogspot.com/2011/12/medieval-german-war-wagon.html|출처]] 대표적으로 바겐부르크를 사용한 사례는 유럽의 후스파에서 보인다. [[보헤미아]] 지역의 종교 개혁가였던 [[얀 후스]]를 추종하던 후스파는 주축이 농민군이었기에 [[기사]]들을 중심으로 한 [[신성 로마 제국]] [[제국군]]과의 야전에서 불리할 수 밖에 없었다. 때문에 후스파의 사령관 [[얀 지슈카]]는 마차로 방어진형을 짜서 기사들의 돌격을 저지하는 전법을 들고 나왔고, [[핸드 캐논]]과 [[석궁]]으로 기사들을 원거리에서부터 조진 후 근거리에까지 달라붙은 기사들은 마차 위에서 [[도리깨]]로 두들기는 전법으로 후스파의 여러 차례 승리를 이끌어내면서 불패의 [[명장]]으로 군림했다. 이러한 마차 방어 진형은 후스파의 거점 타보르에서 이름을 따 타보르라고 불리었으며, 이 영향으로 이후 동유럽에선 타보르가 자주 쓰이게 된다. 이 때문에 "최초의 [[탱크]]"라는 조금은 과분한 평가도 받는다. 그래도 자체적인 포탑과 백병전 저지장치 같은 몇몇 요소가 부족했다는 점을 제외하면, 이후 한국에서 이를 보완하여 만들어진 원시적인 탱크 형태의 전차들보다 100여년 정도 앞선다. [[파일:external/upload.wikimedia.org/800px-Husitsky_bojovy_vuz_replika2.jpg|width=600]] [[파일:external/upload.wikimedia.org/800px-Husitsky_bojovy_vuz_replika.jpg|width=600]] 당시 사용된 바겐부르크(Wagenburg)의 레플리카. [[파일:external/upload.wikimedia.org/344Wagenburg_der_Hussiten.jpg|width=600]] [[파일:external/upload.wikimedia.org/Wagenburg.jpg]] 전형적인 형태. [[http://upload.wikimedia.org/wikipedia/commons/b/ba/Laager.JPG]] 바겐부르크 진형 중 하나의 모습. 저 반달형 진형 테두리의 작은 상자같은 것들이 전부 바겐부르크다. [[얀 지슈카]]가 휘하 농민병들을 이끌고 바겐부르크 진형을 짜서 적 기병대를 상대하는 모습. 1950년대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만든 영화의 장면이다. : [[https://www.youtube.com/watch?v=vVARsQDnqws|영상 링크]] 좀 오래된 영상이라 화질이 안 좋고 길지만 당시 전투모습을 잘 고증하고 있다. 물론 그렇다고 항상 방어진형을 짜는 방어적 전술만 쓴 것은 아니었다. 종종 바겐부르크 자체를 적 진형으로 돌격시키며 싸우는 채리엇 식의 활용도 있던 것은 사실이다. 그러나 그 빈도는 매우 낮았으며, 애초에 바겐부르크 자체가 대형 사륜 [[짐마차]]를 전투용으로 사용하는 것이었다. 때문에 큰 덩치에 비해 느려서, 채리엇처럼 신속하게 움직여 적에게 충격력을 주긴 힘들었다. 초기 채리엇이 4륜을 채택하다 2륜으로 바뀐 이유를 생각해보자. 애초에 잘 쓰일 수가 없는 물건이었다. 정규군들은 기병 전술이나 보병 [[장창]]진이 대중적이었던 것도 있고, 예나 지금이나 시대를 막론하고 수레는 상당히 귀한 물건이다. 후스파의 바겐부르크 진형 전투도 어디까지나 후스파의 주축이 농민군이었기에, 이에 따르는 전투경험과 훈련도 부족, 병력 수 부족을 메꾸기 위해 적극적으로 도입된 것이었다.[* [[장창병]] 대 기병 전투시, 기병도 기병이지만 장창병 역시 우르르 돌진해오는 기병 앞에서 끝까지 창을 잡고 버티는 데는 상당한 강단과 훈련, 그리고 전투경험이 필요하다.][* 다만 헝가리의 장군인 [[야노슈 후냐디]]가 [[오스만 제국]]과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바겐부르크를 수비용으로 적극 활용한 예도 있다. 물론 당시의 오스만 제국은 세력이 쭉쭉 늘어나고 있었던지라 바르나 전투나 2차 [[코소보 전투]] 등에서 연패했지만, 오스만 제국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. 그리고 야노슈 후냐디의 아들이자 헝가리의 마지막 황금기를 이끈 국왕 마티아슈 1세는 이를 변형하여 마차 대신 [[파비스]]를 든 창병이 원형으로 진을 치고 그 안에 총병이나 궁병을 배치하는 전법으로 오스만 제국군을 상대로 상당한 전과를 올렸다.] 이 약점은 결국 최후의 순간에 극명하게 드러난다. [[30년 전쟁]] 시기에 [[바덴]] 변경백은 틸리가 지휘하던 [[가톨릭]]군에 맞서 바겐부르크에 [[대포]]를 실어서 전투에 동원하기도 했는데, 이 때 고정된 바겐부르크는 적의 변칙적인 전술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, 결정적으로 적군이 가한 포격에 아군 진형 내 [[화약]]마차가 터지면서 진형이 통째로 박살나는 일을 겪고 말았다. 성공했다면 정말 탱크의 원형이 되었을 수도 있지만 당시 기술력으로는 무리였을 것이다. 이후 [[근대]]시대로 접어들어서는 화포의 발달로 [[전열보병]]이 주력이 되면서 바겐부르크가 직접적으로 전선에서 활약하는 일은 없었다. 이후 [[서부개척시대]]에나 비슷한 무기가 간간하게 사용되는 정도. 데뷔보다는 훨씬 초라한 몰락이었다. [각주] [[분류:병과]][[분류:제갈량]] [include(틀:포크됨2, title=전투 마차, d=2023-01-18 04:50:57)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